꽤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나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인생을 개척해야만 하는 상황을 만드는데까지 돌고 돌아 왔습니다. 나름 치열하게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안락한 삶을 꿈꾸며 잠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여행이 원래 떠나기 전과 떠난 직후가 가장 기분이 좋죠. 저도 그랬습니다. 여행을 가기로 마음을 먹고, 그 여행을 준비하면서 설레였습니다. 그리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하루 이틀 좋은 낯선 풍경과 새로운 사람들, 어색한 일이 반겨주었습니다. 재미있고 즐겁게 일했습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습니다.
여행을 떠나 안착하려 했습니다. 여행을 오래 하면 익숙해지기 마련입니다. 처음에는 새로웠던 풍경과 사람들이 익숙하다 못해 지겨워집니다. 안보이던 것들이 보이고, 불편한 것을 자꾸 해결하고 싶고. 다른 사람들과의 만남도 가져보고 싶지만 안착한 곳의 사람들하고만 만나니 삶이 좁아지는 것 같습니다. 까칠한 저의 성격 때문에 티격태격 하기도 하고, 조용히 숨죽여 있기도 하는 등 그렇게 살았습니다.
저는 합리적이고, 주체적인 삶을 지향하는 인간입니다.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몸이 움직이는 부류입니다.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성격이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하지 못하면 엄청난 스테레스를 받기도 합니다. 여행을 떠나 안착한 곳에서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구나, 내가 이렇게 살다가는 나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삶이 될 수 있겠구나.
하지만 먹고사니즘은 생각보다 강력한 힘을 발휘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내가 다시 무언가를 탐구하면서 열심히 살 수 있을까라는 걱정도 했습니다. 그 동안 성공했던 일들과 실패했던 상황을 반성하면서 다시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결정했습니다. 다시 나답게 살아보기로. 결정과 실행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제 다시 시작하는 출발선에 섰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이 글을 씁니다.
항상 새로운 환경을 맞이하면 출사표를 쓰듯이 어딘가에 글을 남겼습니다. 이번에도 이 글을 남깁니다. 이제는 더 이상 떠돌아다닐 필요 없는 새로운 여행을 다시 떠납니다. 나에게로의 여행, 내가 나를 고용하는 그런 여행을 시작합니다. 먼 길을 돌아 다시 제다리로 온 느낌입니다.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다시 온 것 같습니다. 두렵지만 신선합니다. 사람들을 만나고, 생각을 정리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나씩 실행하려고 합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 축복이고 감사한 일입니다. 그렇게 소박하게 시작합니다.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는 너무도 흔한 이야기를 또 쓸 수 밖에 없습니다. 마음이 그렇습니다. 물론 창대하고 싶은 욕심은 크지 않습니다. 미약하게 오래 오래 나답게 살고 싶을 뿐입니다.
그날까지... 오픈러닝랩 박형주